노란색을 기다리지 않는다
바나나는 노랗게 익고 감은 주황빛을 띤다. 페이조아에 같은 기준을 적용하면 곤란하다. 익는 동안 초록색이 조금 옅어지기도 하지만 색 변화가 크지 않다. 초록색이라는 이유만으로 아직 먹을 수 없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재배 현장에서는 가지에서 얼마나 쉽게 떨어지는지도 본다. 플로리다대의 안내는 가정에서 기르는 나무라면 첫 열매가 떨어지는 때를 수확 시기의 단서로 삼으라고 설명한다. 판매용 열매도 적은 힘으로 가지에서 떨어지는 때에 수확한다. 익어 가며 과육이 부드러워지는 변화도 함께 살핀다.
이미 사 온 과일이라면 가지에서 떨어지는 힘을 시험할 수는 없다. 손끝에 느껴지는 단단함과 향을 함께 보고, 판매처의 숙도 안내를 참고하는 편이 낫다. 색 하나로 날짜를 정하기 어려운 과일이다. 향을 맡겠다고 여러 번 꾹꾹 누를 필요도 없다. 페이조아는 멍이 쉽게 든다.
한 숟가락 안에 두 가지 질감
반으로 자른 페이조아의 중심은 젤리처럼 반투명하다. 그 둘레에는 더 희고 불투명한 과육이 놓인다. 껍질 가까운 부분은 중심보다 단단하고 약간 보슬보슬하다. 한 덩어리의 매끈한 크림을 예상했다면 숟가락 안에서 두 질감을 만나게 된다.
중심에는 아주 작은 씨들이 들어 있다. 커다란 씨를 골라내야 하는 과일과 달리, 잘 익은 페이조아의 씨는 과육과 함께 먹을 때 크게 거슬리지 않는다. 바깥쪽에서 느껴지는 알갱이 질감을 전부 씨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과육 자체에도 그런 식감이 있다.
먹는 방법은 간단하다. 씻은 열매를 반으로 가르고 숟가락으로 속을 떠먹는다. 껍질을 그릇처럼 쥐면 된다. 처음에는 중심과 바깥쪽을 조금씩 따로 떠보고, 다음에는 함께 떠보자. 같은 반쪽 안에서도 어디를 뜨느냐에 따라 입안에서 느끼는 질감이 달라진다.

남미에서 건너온 정원의 과일
페이조아는 남아메리카가 고향이지만 뉴질랜드에서도 재배한다. 레딩대 식물표본관에 실린 글의 필자는 뉴질랜드에서 보낸 어린 시절을 이 과일로 기억한다. 정원의 상록 관목에 여름꽃이 피고, 가을이면 떨어진 초록 열매를 거두었다고 한다. 누군가에게 낯선 이름인 과일이 다른 곳에서는 집 앞의 계절을 알려 준다.
나무는 열매가 없을 때도 볼거리가 있다. 잎의 윗면은 짙은 초록이고 아랫면은 희다. 꽃에는 도톰한 흰색 또는 옅은 분홍색 꽃잎과 붉은 수술이 달린다. 초록 열매만 늘어놓았을 때보다 꽃이 핀 모습을 보면 정원에 심는 이유를 짐작하기 쉽다. 이 꽃잎도 먹을 수 있다.
생과는 반으로 갈라 먹고, 과육으로 젤리나 주스를 만들기도 한다. 그래도 처음 만난 페이조아라면 한 개는 그대로 잘라 볼 만하다. 단맛과 산미, 파인애플을 떠올리는 향에 앞서 눈에 들어오는 것은 흰 과육 속의 반투명한 중심이다. 초록 껍질만 보고 지나쳤다면 만나지 못할 속이다.



